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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성이 실종되는 곳 |
'구체성'이 실종되기 쉬운 곳
1. 등장인물이 무언가를 하는 구체적인 '이유'
-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시작은 거창할 수 있다. "홀리는 골목으로 숨었다. 샘을 백만 번째 피할 수 있음에 안도하며" 그럴듯하지 않은가? 문제는 홀리가 샘을 피하는 '이유'에 대해 독자가 알기 전까지 이 이야기는 실패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오랜시간 스토킹해왔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녀가 그를 몰래 사랑하고 있는 나머지 헤어스타일이 엉망인 날 그를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으며, 그에게 돈을 빌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누가 알겠는가?
각각의 구체적 가능성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예상할 수 있다. 구체성 없이는 단서도 없다.
2. 은유가 밝혀내고자 하는 구체적인 '것'
- 인간은 이야기로 생각하고 이미지로 생각할 뿐 아니라,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지적대로 '은유'로도 생각한다. 언제나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은유란 "추상적 개념을 분명한 용어로 표현하는 법"이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1분당 여섯 개의 은유를 말한다. 가격이 '뛰어올랐다', 내 마음이 '가라 앉았다', 시간이 '다 흘렀다'. 우리는 잘 알아채지 못하지만 은유는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문학적 은유는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문학적 은유는, 새로운 통찰을 주기 위한 것이며, 숨어 있지도 않다. 문학적 은유는 발견되는 것이 핵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완벽한 정의대로 "은유는 하나의 사물에 다른 무언가에 속한 이름을 주는 것이다"
문제는 작가들이 아름답고 암시적인 은유를 만드는 데 몰두하느라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독자에게 말해주는 걸 잊곤 한다는 점이다. 은유는 반드시 '잡을 수 있어야' 하고 의미를 즉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은유는 단순히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반복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은유는 새로운 정보와 신선한 통찰을 줄 수 있어야 은유가 얼마나 시적이가는 중요하지않다.
3. 주인공 안에서 어떤 상황이 불러일으키는 구체적인 '기억'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는 한, 우리는 샘이 뭘 배웠는지 또 그 교훈이 지금 상황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혹은 그 일이 샘과 홀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독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스스로 빈칸을 메우는 것뿐이다. 이건 보기보다 훨씬 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독자는 빈칸을 채워 넣고도 그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더 안좋은 점은 작가가 빈칸으로 남겨놓은 구체성의 영역을 독자가 스스로 상상해서 메울 수 있는 확률은 로또 당첨 확률과 같기 때문에, 이제 독자는 작가가 써놓은 것과 확실하게 다른 이야기를 그리게 된다는 점이다.
4. 중요한 사건에 대해 주인공이 보이는 구체적인 '반응'
- 독자는 샘이 어떤 기분일지 그저 '막현히' 상상할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면, 이야기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등장인물들은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구체적인 이유를 가지고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이유는 독자가 그 순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어떤 반응의 '진짜 이유'는 지금 눈에 보이는 이유와는 정반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를 붙잡고 싶다면, 등장인물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특히 등장인물이 눈 하나깜짝하지 않는 어떤 일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고 독자에게 이야기할 경우 더더욱 그렇다. 이야기는 일어난 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는 일어난 일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반응 속에 있다.
5. 주인공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가능성들'
- 작가는 각가의 세부 사항들이 왜 중요한지 알고 있다고 해도 독자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심지어는 잠시 멈춰서 그 의미를 파악할 수도 없다. 새로운 디테일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 문단의 끝에 이르면 독자들은 단지 디테일에서뿐만 아니라 이야기 자체에서 길을 잃고 만다. 각각의 디테일을 하나의 달걀이라고 생각해보자. 작가는 우리에게 이 달갈을 차례로 던진다.
우리가 가까스로 균현을 잡은 채 들고 있는, 쌓여가는 달걀 개수에 대해선 알지 못한 채로, 따라서 묘사 중간 어딘가에서 더 이상 달걀을 받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우리 삶에서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넘치는 것보다 모자란 것이 낫다.
전설적 가수 토니 베넷은 '젊었을 때 하지 못한 것 중 80대가 되어 노래할 때 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주저함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는 무엇을 빼야 할지 알게 됐죠."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 우리도 굳이 여든 살까지 기다려야 하겠는가?
우리는 감각적 디테일들은 이야기를 살아 있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한, 감각적 디테일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한다.
- 이야기의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감각적 디테일 역시 이야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이른 아침 도로를 운전하며 손등에 내려앉은 햇빛의 온기라든가, 혀끝에 남아 있는 아침에 먹은 값비싼 딸기의 맛이라든가....
이렇게 시작하는 원고의 첫 장을 읽다보면, 잠이 솔솔 온다. 이야기의 생생한 디테일은 신뢰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 즉, 디테일들은 이야기의 핵심적인 개념을 상징하고 돕는 것이어야 한다.
감각적 디테일이 이야기 속에 들어가야 하는 세 가지 경우
1. 이야기의 플롯과 연관된 인과관계의 일부일 때
- 루시는 셰이크를 마시면 기절한다
2. 인물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알게 해줄 때
- 루시는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당당한 쾌락주의자다.
3. 은유일 때
- 루시가 좋아하는 맛은 그녀가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독자는 반드시 각가의 디테일이 그 이야기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 플롯 측면에서는 간단하다. 바닐라 셰이크를 마시는 동안 루시는 의식에서 빠져나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 관계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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