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이유 |마케팅 심리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심리 

믿고 싶은 정보만 습득하는 경향 


- 우리는 마음 전체가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동의한다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런 고요한 자아상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측좌핵은 돼지고기를 원하지만 뇌섬은 그것을 살 여유가 없다고 말하거나 전전두피질은 별로 좋은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상반되는 반응은 뇌가 그만큼 확신이 없다는 증거다. 그런 경우,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도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불확실성을 용납하지 못하는 뇌는 종종 스스로를 현혹해서 그릇된 방향으로 치우치기 쉽다. 

상명하달식 사고의 유혹에 빠지는 뇌 


- 일단 어떤 것을 결정하고 나면 사실과 정보를 스스로의 이데올로기에 적합하게 이리저리 편집해버린다. 그 순간 합리성은 커다란 장애 요소로 바뀐다. 그 이유는 우이가 믿고 있는 신념은 뭐든 정당화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전두피질은 정보를 걸러내는 통로, 곧 반대되는 의견을 모두 봉쇄하는 방어벽으로 전락한다. 

합의를 돌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 자신감은 위안을 주기 때문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늘 옳은 답을 내놓고 싶다는 이런 욕망은 서로 경쟁하는 뇌 부위들의 다툼에서 파생하는 위험한 부작용이다. 우리 뇌는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뇌의 어떤 부위의 신호를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고, 생각이 많을 때는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어떤 일에 확신을 갖게 되었을 때 안도감이 밀려드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 혼란스러운 뇌의 상태는 우유부단한 불일치를 일으킨다. 다양한 두 뇌 부위들이 서로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확실성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강제로 합의를 끌어내 이런 내면의 혼란 상태를 매듭짓는다. 

즉, 우리 뇌 전체가 우리의 행동에 동의를 표시했다고 치부하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귀찮은 우려와 성가신 의심, 통계 자료와 불편한 진실들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틀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중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확실성의 매력은 우리의 뇌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는 분단 뇌 환자들을 통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분단된 뇌 환자 예시


- 분단뇌 환자들의 시야에 특별한 도구를 이용해 여러 가지 그림들을 비춰준다. 예를 들어, 오른쪽 시야에는 닭의 발톱 그림을 보여주고, 왼쪽 시야에는 눈이 쌓인 진입로 그림을 보여준다. 환자에게 다양한 그림을 제시하고 방금 본 그림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그림을 고르라고 

말한다. 그러면 분단뇌 환자는 우유부단의 희비극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양손으로 서로 다른 두 개의 그림을 가리킨다. 즉, 오른손으로는 닭을 가리키고, 왼손으로는 삽을 가리킨다. 환자의 모순된 반응은 우리 각자의 안에 존재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즉, 같은 뇌가 서로 다른 두 가지 대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분단뇌 환자에게 그런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설명해보라고 하면,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진다. 환자는 어렵지 않게 설명할 말을 찾아낸다. 

설명요? 아주 쉽죠. 닭의 발톱은 닭과 어울리고, 닭의 축사를 청소하려면 삽이 필요하니까요.


그 환자는 자신의 뇌가 혼란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그런 혼란을 그럴듯한 이야기 속에 엮어 넣는다. 심지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할 때면 평소보다 훨씬 더 큰 자신감을 보인다. 이는 과잉 보상의 전형적인 사례다. 


내면의 모순을 억누르려는 깊은 충동은 인간의 생각을 특징짓는 근본 요소 가운데 하나다. 인간의 뇌 속에서는 좌뇌와 우뇌가 서로 다른 관점을 주장하면서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결국 우리는 생각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에도 합일에 이른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즉, 확신에 도달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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