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능은 변화를 거부한다 |마케팅

 

 변화 거부는 사람의 본능  


우리는 본능적으로 변화를 거부한다 


- 우리가 자기 믿음을 반박하는 말을 들었을 때 '싸우자'라는 식으로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변화를 거부하게 되어 있다. 때로는 필사적으로 거부한다. 왜냐하면 진화론적으로 볼 때 거의 예외 없이,

변화를 거부하면 고집쟁이가 되는 게 아니라 똑똑한 사람이 됐으니까. 한마디로 '항상성' 이라고 하는 현상이다. 생체는 일단 평형 상태에 이르면 평형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 할 뿐 아니라 '특정한' 평형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과거 경험을 통해 그 상태가 안전하다는 게 증명됐으니까. 지금 계속 살아 있는 게 그 증명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생물은 신체적 생존이 보장되는 환경을 발견하면 꼼짝하지 않고 거기에 머물게 되어 있다. 


아무리 고달프다고 해도 안전지대를 벗어날 이유가 있을까?


- 미지의 영역, 예상치 못한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곳은 뭔가 지금보다 나쁜 것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우리가 그 무엇보다 무서워하는 대상인 것이다.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대대적인 변화의 실행을 나중으로 미룬다. 

푹쉬고 나서, 좋은 기회가 있을 때, 아니면 음양오행론적으로 길일을 택해서 하겠다고 한다. 쉽게 말해, 절대 안 한다. 그러니 뭔가가 우리의 평형 상태를 위협하면, 그게 굶주린 맹수든 우리 믿음을 반박하는 발상이든 간에, 방어막을 치고 힘껏 싸우는 게 당연하다. 

그게 우리의 본능이다. 새로운 정보를 활용하면 결과적으로 더 안전해질 수 있는 경우라 해도 그렇다.  


'항상성'의 진화


- 왜 새로운 주장을 하면 무슨 복면 쓴 강도처럼 위험하게 취급할까? 그 이유는 이렇다. 항상성이란게 처음에는 물리적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생체 반응이었지만, 그게 점점 진화해 사회적 영역까지 넓어지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신경 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말하는 '사회문화적 항상성'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땅을 침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도 필사적으로 싸우지만,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웃들과 공유하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도 전투를 불사하는 것이다.

그런 결정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내리는 게 아니다. 뇌가 총알을 피하는 반사 작용에 가깝다. 실제 총알이든 비유적인 의미의 총알이든 말이다. 

우리 뇌의 감정 계통은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가 강하게 동일시하는 정신적 측면, 이를테면 깊숙이 간직한 믿음 등을 보호할 때도 관여하는 듯하다. 


- 그 이유는, 우리 뇌의 일차적 역할은 몸을 보살피고 보호하는 것이다. 심리적 자아는 그 역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자아는 공격을 감지하면 몸을 보호하는 데 쓰이는 것과 똑같은 방어 기제를 발동한다. 

우리 뇌는 신체에 대한 위협이나 자신의 신념 체계에 대한 반박이나 똑같은 것으로 인식한다. 두 신호 모두 똑같은 신경 통로로 똑같은 것으로 인식한다. 두 신호 모두 똑같은 신경 통로로 전해지면서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리 몸이 거기에 반응하는 덕분에 우리는 재빨리 상황을 판단해야 하는 수고를 아낄 수 있다. 우리가 화를 내야겠다고 결정해서 화를 내는 게 아니다. 싸워야겠다고 결정해서 싸우는 것도 아니다. 우리 뇌가 생존에 대한 위협을 감지하고,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 생물적인 작용은 편도체에서 부터 시작 된다 


- 편도체는 대뇌의 측두엽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부위로, 앞날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기억을 가려내, 저장될 수 있게 하는 구실을 한다. 무언가 위협을 느끼면, 공포 신호를 발생시켜 감정을 다스리는 대뇌변연계를 경계 태세로 만든다. 

그러면 뇌의 생각하는 부위는 즉시 동작을 멈춘다. 싸우거나 도망치는 데 필요한 생리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 사람을 설득할 때 사실에만 호소했다가는 정반대 효과만 일으키는 이유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어긋나는 정보를 제시받으면, 원래 생각을 더 강하게 뒷받침하는 반론을 아예 새로 생각해 내기도 하는데, 이것을 '부메랑 효과'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사소해 보이는 변화를 요청받았을 때도 일어난다. 예를 들면 그릇을 잘 헹궈서 식기세척기에 넣으라는 것 같은 작은 것이다. '객관적'인 관찰자가 보기에는 사소한 변화일지 몰라도, 변화를 요구받은 당사자에게는 전혀 사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바늘만 한 것을 몽둥이만 하다고 부풀리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이 정말 몽둥이로 느껴서 그러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뭔가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면, 더군다나 어떤 행동을 바꾸면 좋을 것 같다는 권고가 거기에 눈꼽만큼이라도 섞여 있으면, 

상대방의 머릿속에는 빨간불이 켜지면서 이런 메시지가 번쩍거리기 쉽다. '너 뭔가 잘못하고 있어. 실수한 거야!' 진짜, 이런 시도가 잘 통하는 경우를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는가? 잔소리로 여기게 된다. 

문제는 타인에게 갑자기 뭔가를 일깨워 주면 반박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 전하느냐에 따라 다른 반응이 유발된다. 상대 앞에서 주장을 펴는 행위는, 내 주장을 따져 보든지 뜯어보든지 비판하든지 해서 평가한 다음, 말로든 머릿속으로든 반론을 펴 보라고 청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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