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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라는 착각 |
사람은 팩트를 그대로 믿지 않는다
- 사실(fact)라고 하면 편안하게 느껴진다. 확고부동하고 냉철하고 중립적이면서, 완벽히 논리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사실은 객관적이니까, 객관적이란 건 사전에 따르면 '정신과 독립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론의 여지없이 명백한 진실을 가리킨다. 그런데 안탑깝게도 사실에는 늘 모호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사실을 여러 의미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비롯해 모든 사람은 '객관적' 현실을 주관적 안경 너머로 본다.
각자의 개인적 서사라고 하는 안경이다. 그러므로 사실 그 자체는 정신과 독립해서 존재한다 해도, 사실이 갖는 '의미'는 절대 그렇지 않다. 격렬한 정치 논쟁을 지켜보면 알 수 있지만, 사람마다 객관적 현실이라는 것을 완전히 다르게 본다.
우리는 뭔가를 믿기 시작하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는 뭔가를 한번 믿기 시작하면 그걸 믿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눈만 똑바로 뜨면 볼 수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을 사실로 물리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상대방이 사실에 부여하는 주관적 의미다.
그 때문에 우리의 말이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 말이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 이유도 똑같다. 그래서 상대방의 세상 보는 관점을 바꿔줄 스토리를 만들려면 알아 둬야 할 것이, 상대가 부여한 주관적 의미는 애초에 다 무미건조한 사실에서 왔다는 점이다.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우리가 사실에 부여한 주관적 의미를 객관적 의미로 착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우리의 믿음을 반박하려고 할 때 우리가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되어있다.
상대 믿음을 바꿀 생각으로 호소하면 절대 먹히지 않는다
- 상대방의 열렬한 믿음을 바꿀 생각으로 사실에 호소한다면, 잘해야 오해를 빚을 테고, 잘못되면 주먹다짐을 벌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간직한 신념에 반하는 사실을 접하면 화가 벌컥 나기 마련이다.
싸움이 날만도 한것이, 사실 자체가 화낼 만한 내용이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그 사실과 관련해 지어낸 서사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 직접 언급하지도 말고, 스토리 속에 넣지도 말아야 한다. 중립적 사실도 딱히 더 나을 건 없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완벽히 옳은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에게 실제로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우리 뇌는 모든 결정을 '다가갈까 물러날까approach or withdraw' 모드로 검토한다. 즉, '안전한지 아닌지' 묻는다. 엄밀히 말하면, 그냥 안전한지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구체적 동기에 비춰서 안전한지를 묻는다.
- 안전을 유지하려면 에너지 소비가 많다. 추상적, 관념적, 중립적인 사실을 상대할 여유가 없다. 남들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믿는 사실이라도 소용없다. 게다가 사실을 제시받고 나면 할 일이 많아진다.
그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의미를 판단하고, 맥락을 상상해 스토리로 만들어 스스로에게 들려준 다음, 내게 과연 중요한 것인지, 중요하다면 왜 중요한지를 파악해야 한다. 사실을 앞세우다 보면 실수를 하기 쉽다.
과학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그렇다. 아마 과학자들은 통계 숫자만 제시하면 듣는 사람 머릿속에 곧바로 머릿속에 내가 생각하는 것을 상대도 똑같이 생각할 것이라는 실수다.
사람의 관심을 사로 잡으려면
- 어떤 사실이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면, 그 사실이 어떤 귀결을 낳는지 우리 눈에 간단명료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보여야 한다. 꼭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끼칠 필요도 없다. 그러지 않더라도 우리 관심을 단박에 사로 잡을 수 있다.
가령 우리의 신념 체계나, 우리의 자아상이나,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 눈에 비칠 우리 모습과 관련이 있으면 된다. 집단 안에서는 사회적 위상만큼 중요한 게 없다. 우리는 집단 구성원들의 의견을 중시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실이 그 자체로 당장 행동을 촉발하는 경우는 딱 하나다. 명백하면서 당면한 위험을 전할 때 뿐이다.
- 자기 믿음을 입증하는 사실도 우리는 잘 받아들인다. 이미 우리 머릿속에 해석할 틀이 마련돼 있기도 하고, 또 우리 믿음이 옳음을 확인함으로써 스스로 똑똑하다는 만족감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런 사실은 우리의 주관적 서사에 잘 들어맞고 또 엄청난 효과가 있다.
우리의 목표가 스토리를 듣는 상대의 현재 상태를 더 공고히 해 주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장을 펴고, 광고를 벌이고, 뭔가를 호소하는 목적으로 듣는이로 하여금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 이때 사람을 전투 모드로 만드는 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호소나 설득이나 주장 그 자체가 아니다. 사실이 그 사람의 개인적 서사에 어떤 식으로 들어맞느냐가 문제다. 개인적 서사는 일종의 '암호 해독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무슨 사실이든 그것으로 해독한다.
암호 해독기를 돌려서 거짓으로 판정되면 차단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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