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를 들려 줄 대상 특정 짓기 |모두에게 통하는 것은 없다

 

대상 특정 짓기 마케팅

누구에게 들려 줄까? 


- 스토리의 청중을 정의할 때, 흔히 잘못 생각하는 답이 두 가지 있다. 그 실수에 빠졌다가는, 아무도 우리 스토리를 들어줄 가망이 없게 된다. 우리의 청중이 '아닌' 사람은 다음과 같다. 

1) 나 자신 
2) 세상 모든 사람 


- 내가 전하려는 요점은 나에게 중요하니까, 상대방에게도 똑같은 이유로 중요할 것착각하기 쉽다. 내가 남에게 어떤 문제를 설득하려고 할 때,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는다. 

영혼을 살찌우고, 시간을 아껴주는 10초 명상 앱을 다운 받아야 한다고 아무리 외친들,사람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신경 쓰는 건 딱 하나밖에 없다. 우리가 하는 주장이, 우리가 요청하는 행동이, 

자기의 신념체계와 자기의 서사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세계관에 들어맞느냐, 그래서 자기가 지금 안고 있는 문제를 풀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 뿐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서 그러는 건 아니다. 

또 우리가 스스로의 착각을 깨닫지 못한다고 해서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인 것도 아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가 가진 관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모르면 크나큰 걸림돌이 되고, 잘 활용하면 막강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을 자기가 가진 관점으로 본다 


- 이런 '지식의 저주'를 아무리 잘 아는 사람이라 해도,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당연히 내가 아는 걸 똑같이 알고, 내가 원하는 걸 똑같이 원하리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우리는 남들에게 영향을 주려고 할 때, 가장 최우선으로 우리 자신을 생각한다. 우리에게 설득력을 갖는 것, 우리의 정신 상태, 우리의 욕구, 우리의 목표 등을 고심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행동과 믿음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상대방'의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상대방' 뇌의 작동 원리를 따라야 한다. 


- 그래서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만들려면, 즉 상대방의 세상 보는 관점을 바꿔줄 스토리를 만들려면, 우리의 전문 지식이 상대방의 필요와 만나는 접점을 찾아야만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훤히 보여서 쉽게 파악 되기도 한다. 


만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만인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면,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공통된 관심사와 믿음을 가지고 물리적/사회적 생존이라는 목표로 한데 뭉친 개개인뿐이다. 

만인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면 청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일보다 아무의 반감도 사지 않는 데 치중하게 된다. 스토리를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만드는 데 창의력을 쏟아붓게 된다. 우리가 공략해야 할, 단일한 공통의 믿음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정확히 어디를 겨눠야 할까?


-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을 필요로 하게 되어 있지만, 세상 '모든 사람'을 다 필요로하게 되어 있지는 않다. 우리가 속한 집단의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그 집단에 의존해 사회적으로 생존해 나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도 얻는다. 

물론 성장하면서 전에 속했던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 어느 집단도 결코 '만인'은 아니다. 그래서 집단마다 다른 스토리를 마련해야 한다. 집단마다 신념 체계에 따라 여러분의 행동 요청을 다르게 바라보기 마련이니까.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 어떤 고객에게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 편이 낫다. 아무리 우리와 함께하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다. 우리의 제안을 오해하기에 십상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금방 불평을 늘어놓는다. 

우리가 애초에 약속한 적도 없는 것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SNS에 폭로하겠다고 하루 24시간, 연중무휴로 협박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실상 우리 능력 밖인 무언가를 내놓으려고 애쓰거나 온 산을 돌아다니며 잔불을 끄느라 바빠서, 

정작 우리 서비스가 잘 '맞는' 고객에게 최선을 다할 여력이 없어진다. 

거절 했을 때의 이득 


- 피해야 할 상대를 정함으로써 우리에게 '맞는' 상대도 더 확실히 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과 우리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더 명확히 가다듬을 수 있게 된다. 또 어차피 집단의 신념 체계가 우리와 맞지 않을 사람들을 미리 걸러낼 수 있다. 

그러면 굳이 그들을 포섭하려고 애쓰거나, 최대한 넓은 범위의 청중에게 어필하려고 우리 일에 밍밍하게 물을 타고 싶은 유혹을 피할 수 있다. 우리의 청중은 대단히 많을 필요가 없다. 열혈 팬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만 모으면 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여러분의 행동 요청을 자기 일처럼 홍보하고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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